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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 (3-2). 문재인이 참여정부를 계승하는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싫다.

 

황인채

⓷ “이상호 기자의 삼성 X파일”이라는 책을 보면 삼성비리 수호자 노무현 정부가 보인다.

(이 글을 참여정부를 비판적인 눈으로 보고 새로 들어서는 정부는 참여정부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부가 되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쓰였음.)

 

삼성 X파일이란 삼성 비서실 이학수 실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대화한 내용을 안기부 직원들이 도청하여 녹음한 테이프 내용과 그 내용을 녹취하여 요약한 세 종류의 보고서 형태로 된 문서를 말한다.

MBC 이상호 기자는 삼성 X파일 가운데 세 종류의 문서만을 제보자 황영진(실명은 박인회로 제일교포인데 이상호 기자의 책에서는 이 가명을 사용함)씨로부터 2004년 10월 26일에 받았다. 문서가 작성된 시기는 1997년 4월과 9월과 10월로 되어 있었다.

테이프는 우여 곡절 끝에 2004년 12월 30일에 받았다. 이상호 기자는 삼성 X 파일에 담긴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아래는 책 “이상호 기자 X파일” 10페이지에서 인용(인용한 글은 아래에 계속 “~~~ 인용문 ~~~” 형태로 제시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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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테이프는 93분 분량으로 삼성의 제2인자 이학수 실장이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지시 내용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게 전달하고, 홍 회장이 그동안에 이행한 내용을 보고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테이프 내용과 이후 추가 취재를 통해서 확인된 삼성 X 파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삼성 이건희 일가는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100억 원대의 비자금을 선거를 앞둔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했다.

두 번째, 삼성은 정기적으로 검찰 간부들에게 수억 원대의 뇌물을 전달해 왔으며 향후 지속적으로 전달할 계획을 세웠다.

세 번째, 삼성이 국회에 자신들의 프락치를 심었으며 당 대표를 상대로 프락치에 대한 적절한 대우를 요구했다.

네 번째, 삼성이 기아 차 인수를 위해 기아의 은행 대출금 수억 원을 일시에 상환하도록 정치권에 로비한 정황이 있으며, 결국 기아 도산으로 IMF 파국이 가속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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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이 삼성 X파일 내용을 이해하기 편하도록 하기 위해서 여기에 몇 가지 사실을 설명하고 나아가겠다. 여기에 나오는 대선은 주요 후보로 여당 대통령 후보로 이회창 씨가 나오고 야당 후보로 김대중 씨가 나온 제 15대 대통령 선거다. 이 선거에서 김대중 씨가 제 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홍석현 씨는 이건희 씨의 처남이고, 이상호 기자가 이 X파일을 처음 제보 받은 때는 노무현 씨가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한 다음해인 12월 말이었다.

제보자 박인회 씨는 이 X파일을 제공하며 다음과 같이 제공 동기를 이야기하였다.

*아래는 이상호 가자의 책 27-28페이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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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회 씨는 주간지 한부를 내 앞에 내밀었다. 1면에 홍석현 씨가 UN 사무총장 경쟁에 나설 것이라는 제목이 붉은 글씨로 대서특필되었다.

“이것 보세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같은 사람이 주미 대사를 발판삼아 UN 사무총장 감으로 거론되고 있으니, 정말 나라꼴이 이래서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에 인재가 없나요? 도대체 노무현 정부는 제정신이란 말입니까? 왜 저렇게 삼성 앞에 설설 기는지 모르겠어요.”

주간 신문 기사는 참여정부 핵심인사와의 익명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었다. 핵심 내용인즉슨 정부와 청와대가 외교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주미대사 내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홍 회장이 주미대사를 퇴임하면 그를 아시아 몫으로 돌아올 차기 UN 사무총장에 밀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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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보를 받은 이후에 이상호 가자는 삼성 X파일 내용을 MBC에서 방송하기 위하여 피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것은 참여정부와 삼성재벌, 그리고 국정원이 보도를 반대하는 일을 한 기자가 추진하기가 너무도 벅찼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에 삼성과 국정원 사이의 깊은 관계는 김용철씨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하다.”라는 책 61페이지에서 인용한 다음 글을 보면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안기부 X파일 논란이 될 때인 2005년 7월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연호 삼성경제 연구소 전무를 국정원 최고정보 책임자로 임명했다.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상호 기자가 X파일을 보도하는 것을 직접 반대하는 자들을 MBC 사장과 회사 간부들이었다. 그리고 동료 기자들 중에도 그 일에 반대하는 자가 더 많았기 때문에 그는 회사에서 따돌림을 받은 채 분투하여야 하였다. 그들 중에는 삼성 장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삼성 X파일을 보도하려 애쓰던 때에 삼성에서는 MBC 보도국 이인용 부국장을 스카우트하여 삼성전자 홍보 전무로 데려가는 일을 하였다. 이렇게 되면 삼성이 그를 이용하여 MBC 방송을 제어하는 일이 훨씬 용이해 질 것이기 때문에 이상호 기자는 더욱 어려운 싸움을 하게 될 것을 걱정하였다.

이렇게 이상호 기자가 X 파일 내용을 보도하지 못하고 애를 태우고 있는 동안에 2005년 2월 22일에 홍석현 씨는 보란 듯이 주미 대사로 부임하였다.

형편이 이러하니 이상호의 표현을 빌자면 X파일을 보도하려는 노력은 그야말로 생명을 건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러는 중에도 그의 편에 서서 힘이 되어주는 의로운 자들도 있어서 10개월 후에는 X파일 중 일부 내용을 보도할 수 있었다.

이상호 기자의 이 투쟁 기록은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고, 또 매우 잘 정리되어 있어서 한권의 긴박한 소설을 읽듯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언론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배울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책이었다.

MBC 방송은 여러 곳에서 보도 압력을 받자 2005년 7월21일 이상호 기자를 내세워 삼성 X파일 사건에 대하여 첫 보도를 시작한 후, 삼성 X파일 보도를 조심스럽게 계속하였다. 그 후 홍석현 주미 대사는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어 사표를 내게 되었다. 결국 2005년 7월 26일 노무현 대통령은 홍대사의 사의를 수용하여 그는 5개월 만에 대사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과 그 때의 청와대 민정수석 문재인 씨는 삼성 X파일 사건을 검찰에서 수사하자고 하였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특검을 요구하였다.

*아래는 이상호 기자의 책 303 페이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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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삼성 X파일 사건에 대하여 본질이 뇌물(제공 사건이라기)보다 도청이라고 규정(함). (그러자 여러 곳에서 대통령이) 사실상 검찰수사를 지휘한 게 아니냐는 비판제기(됨). (그러나 대통령은) ‘국가기관에 의한 도청은 부끄러운 일’인 반면, ‘삼성의 불법행위 공개는 어려운 판단의 문제’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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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문제에 대한 공방에 대하여 이상호 기자가 지난 1월에 다시 “당시 민정수석 문재인이, 삼성 X파일 특검 막았다.”고 문제를 제기한 일이 있었다. 그 일에 대한 상호간의 공방에 대하여 정리한 기사 하나에 링크를 걸어 두겠으니 궁금한 분은 읽어 보시기 바란다.

http://www.sisa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212

삼성 X파일 파일을 이상호 기자에게 전달한 박인회 씨는 구속되었다. 그 후 1심에서 징역 1년 2개월 선고되었다. 그러나 삼성 관련자들은 황교안(현재 국무총리 대행) 공안 검사가 지휘한 검찰 수사에서 아래와 같이 모두 불기소 되었다. 이 사건이 왜 공안 검사요, 재벌에게 유리한 조사를 할 가능성이 매우 큰 황교안 씨에 맡겨졌는가? 참여정부에서 일부러 그를 내세워서 수사를 방해한 것이 아닐까?

*아래는 한겨레 2015년 5월 25일 기사에서 인용한 이 수사에 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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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공안1·3과장, 서울지검 공안2부장 등을 거친 황(교안) 후보자는 공안수사의 교과서로 불리는 <국가보안법 해설>의 저자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던 2005년 7월 국가정보원 도청 자료를 통해 폭로된 이른바 ‘삼성 엑스파일 사건’ 특별수사팀의 지휘를 맡았다.

횡령과 뇌물공여 혐의를 받던 이건희 삼성 회장을 서면조사만 하고 수사를 마무리하는 등 삼성 쪽 인사 모두를 불기소 처분했다. 반면 엑스파일 내용을 보도한 이상호 <문화방송>(MBC) 기자와 녹취록 전문을 실은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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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92233.html#csidx0471457a1b89c4ea298f325d3f20293

이상호 기자는 2006년 11월 23일 고등법원에서 징역6월,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노회찬 씨는 2014년 2월 14일 X파일에 나오는 떡값 검사 7명의 명단을 보도한 것에 대하여 유죄가 확정되어 국회의원 직무가 박탈되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뇌물을 제공하여 이 나라를 무법천지로 만든 자들은 처벌받지 않고, 이 나라를 깨끗한 나라로 만들고자 헌신하였던 자들은 유죄를 선고받고 커다란 희생을 치르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참여정부 아래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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