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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부풀어 올라 활짝 핀 여심, 그리고 군화
                                             이라크 전쟁에 부친 글
황인채

                       1.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꽃과 군화인데


 이 봄에 이라크에서 들리는 소식은 하늘에서 포탄이 비오듯이 쏟아지고, 처참한 비명 소리가 들리고, 몸이 부서지고, 피가 튀기고… 지옥, 아수라, 두려움과 초조, 창자가 등에 붙는 배고픔과 타는 목마름― 이렇게 우리가 상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아도 다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그 곳에서 우리가 꿈꾸고 믿었던 것들, 사랑과 평화와 자유와 평등과 정의, 이 모 든 것도 역시 포탄을 맞아 우르르 쾅쾅 굉음을 내며 깨어지고 부서지고 뭉개지고 불타고


 단란한 가정, 아기가 까르르 웃고 해처럼 밝고 건강하던 아내와 행복이 깃들인 보금자리도, 하늘을 자유롭게 날던 비둘기가 포수의 총에 맞아서 떨어지듯이 포격을  맞아서 맥없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이 전쟁 소식이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갈 무렵에야, 내가 원하던 것과 반대로 끝나는 거지만 어쨌든 끝나기는 끝나는 것이기에, 나는 약간의 마음의 여유를 찾았던 것일까? 서울에도 봄이 한껏 무르익어 곳곳 마다 봄꽃이 활짝 피어 저마다 더없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는 거를 알 수 있었지.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 라일락, 조팝나무, 풀명자나무, 벚나무 그 외에도 이름을 모르는 나무들과 풀들에 꽃이 피어 있었어. 라일락에서는 은은하면서도 톡 쏘는 듯도 한 향기도 피어나고


봄꽃이 주는 아름다움은 나를 취하게 하고 흠뻑 빠져들어 큰 기쁨을 느끼게 하였어. 그리고 자연은 우리에게 추운 겨울이 지난 다음에야 따스한 봄날이 오고 꽃도 핀다는 거를 깨우쳐 주는구먼. 살을 에는 겨울바람과 수도관이 얼어 터지는 추위 속에서 나무와 풀들은 덜덜 떨며 이를 악물고 봄을 꿈꾸고 준비하였겠지.


이 때에 나는 인터넷에도 봄꽃이 활짝 피어 있다는 거를 알았어. 내가 자주 들리는 시사 딴지 엑스파일이라는 곳에서 김자윤이라는 분이 찍어 놓은 봄꽃들을 보며 또다른 기쁨을 느꼈지. 여성이 찍은 사진으로 보는 봄꽃에서 꽃을 보며 느끼는 여심이 어떤 건지를 미루어 생각해 볼 수도 있었고


내가 온통 이라크 전쟁터에 빠져서 전쟁에서 망가지는 사람들 모습에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동안에도, 전쟁과는 전혀 무관하게 한가하게 꽃이나 찾으며 더없이 큰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에 대해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더군. 그런데 그 뿐 아니었어. 내가 읽어 주지 않았을 뿐이지 인터넷 문예 게시판에 올라오는 여인들이 쓴 글들도 역시 전쟁과는 상관없는 남녀의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채워져 있다는 거를 발견했어.


봄은 여성의 계절이라고 하던가. 나무에 물이 오르고 꽃망울이 생기고 벌어져서 활짝 피어나듯이, 여성도 봄에 물이 오르고 망울이 지고 활짝 피어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거리에 활보하는 여성들을 보니, 여성들의 차림과 표정도 역시 꽃처럼 환하게 피어난 거를 알 수 있었지. 여성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보고 싶어라.


아름다운 거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감동을 주지만. 여성은 정의보다는 아름다움을 앞세우고, 역사나 사회보다는 가정과 사랑을 더 귀하여 여기고, 존경받기보다는 사랑받기 원하고. 이렇게 여성의 마음이 한쪽으로만 기우는 것이 아쉽기도 하였어. 김자윤 님이 아름다운 봄꽃 사이에 미군의 군화 발에 처참하게 뭉개진 꽃을 찍은 사진을 양념처럼 한두 개라도 넣어줄 수는 없는 것일까?

               2.고전 속에서 가르침을 찾아볼까?


노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더군.

                                          골짜기 신은 영원히 죽지 않는데(谷神不死)
                                          이르기를 신비한 여신이라 하네(是謂玄牝)
                                          이 신비한 여신네 집안을(玄牝之門)
                                          모든 것의 뿌리라 하네(是謂天地根)
                                          보이지는 않지만 끊어지지 않고(緜緜若存)
                                          쉬지 않고 일해도 피곤하지 않네(用之不勤)


노자는 높은 산마루 보다는 낮은 골짜기를 사랑하고 잘난 남자보다는 못난 여자를 사랑한 것일까? 이 글에서 낮은 골자기에 사는 낮은 여신을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로 높였나니. 노자가 세상을 보는 눈은 높은 자리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는 거를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정반대였나니. 비천한 사람이 사는 낮은 곳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높은 자들은 잠시 살다 죽지만 낮은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며, 튀지는 않고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역사를 이어 가는 참 주인으로 여겼어.


이렇게 생각하면 이라크 전쟁을 보며 초조해 하는 나보다는 그와 상관없이 봄꽃을 보고 아끼며 꽃과 하나가 되는 마음이 더 소중하고, 내가 반전 시위에 참여하여 전경과 몸싸움도 하고 구호를 외치며 몸부림쳤던 거보다 꽃을 사랑하는 여성의 마음이 평화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고

어느 날 석가모니 부처께서 영취산에 나가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나니. 그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꽃비가 쏟아져 내렸나니. 부처님은 한 송이 꽃을 들어 보이신지라. 대중들은 하찮은 꽃 한 송이를 부처님이 드신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 하건마는, 대중 가운데 가섭이라는 사람만 빙그레 웃으니라. 이에 부처님은 “내 마음과 가섭 씨 마음이 하나로 통하는구나. 그 분을 내 뒤를 이어 불법을 가르칠 분으로 높이노라.” 하였어.


이 봄에 산과들에 피는 꽃을 석가모니께서 영취산에서 가르칠 때 하늘에서 내린 꽃과 같다면, 부처님이 드신 꽃을 김자윤 님이 찍은 사진과 같을 것이요. 이 사진에 큰 공력이 있어, 이라크를 침략하였던 부시가 이 꽃을 보고 크게 감동하고 반성하여 눈물을 펑펑 쏟은 다음에 맑게 웃는다면, 김자윤 님은 부시를 가섭으로 여길 것이고. “부시 씨, 내가 사진 잘 찍는 기술을 가르쳐 줄 텐께, 지금부터는 전쟁할 생각일랑 아예 말고 예쁜 사진이나 찍으며 사시오. 알어먹었소!”


그나저나 부시는 죄 많이 짓고, 그 벌로 이 담에 죽은 다음에 독사로 태어나서 땅굴에 살며 배로 기는 낮은 포복으로 먹이 사냥하며 살건말건. 나는 지금 혹시라도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폭군 부시가 봄꽃을 보고 깨우쳐서 부처님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발원하고지고

지금 승리자 부시 대통령 마음은 허불쭉 기뻐하며 이라크 석유를 팔아서 잘먹고 잘살 꿈에 터질 듯하겠지만. 부시가 섬기는 예수는 뭐라고 말하고 계시는지 성경에서 찾아보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지 살펴 보아라. 그것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부시)도 이 꽃 한 송이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신약 마테오 중에서*” 예수님은 부시가 빼앗은 석유보다 김자윤 님이 찍으신 봄꽃 사진들이 귀하다고 하시는구나.


또 같은 마테오 중 한 곳에서 예수님은 “카이사르(로마제국황제)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라.”고 하셨어. 석유는 예수님과 무관한 부시가 가지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이라크 백성 중에 있는 봄꽃처럼 예쁜 마음만은 하느님께서 받으시겠다는 선언.


구약 시편 39편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노래도 있으니. “악한 자가 잘된다고 불평하지 말며 불의한 자가 잘 산다고 부러워 말아라. 풀처럼 삽시간에 그들은 시들고 푸성귀처럼 금방 스러지리니” “조금만 기다려라, 악인은 망할 것이다. 아무리 그 있던 자리를 찾아도 그는 이미 없으리라. 보잘것없는 사람은 땅을 차지하고, 태평세월을 누리리라.”


노자가 골짜기 여신이 세상의 주인이라 하듯이 성경도 보잘것없는 사람을 축복하는 것을 보고, 후세인에게 시달리다가 이제는 부시에게 시달리는 이라크 백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은지고.

                                 3.부시가 사랑한 이라크 처녀


이번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부시라는 미국 병사가 있었나니

그는 미국의 승리를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미군이었나니

그가 우쭐거리며 바그다드 시내를 활보하던 어느 날 한 이라크 처녀를 보고 한눈에 반했나니

그는 그 처녀에게 들꽃을 따서 선물하려 하여 들에 나가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나니

꽃이란 꽃은 모두 군화 발에 짓이겨져서 사라졌음에야 어찌하랴

할 수 없이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최고 최첨단 기술로 만든 진짜 꽃보다 더 아름답고 값비싼 가짜 꽃을 가져다 사랑하는 아랍 처녀에게 바쳤겠다

헌데 호기심에 그 꽃을 받아들고 요모조모 살피며 즐기던 아랍처녀는 그 꽃이 가짜인 것을 알고 흥미를 잃고 꽃을 버리고 떠나버렸구나

쓸데없는 가짜 사랑 부시의 짝사랑이 애처롭구나.
한국에 한 젊은 시인이 있었나니


그는 미군의 이라크 침략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불쌍해서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기 위해 이라크에 간 자로다
그가 공습으로 폐허가 된 바그다드 시내를 괴로운 마음으로 걷다가 부시의 짝사랑 처녀를 만났어. 그도 한눈에 반했지롱.
그도 그 처녀에게 들꽃을 바치려고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들에 핀 나리꽃을 한 뿌리를 캐서 분에 정성껏 심어서 이라크 처녀에게 가져다가 주었겠다.


처녀는 그거가 참꽃이고 한국 시인의 사랑이 진짜 사랑인 거를 알고 기꺼이 나리꽃과 함께 이 시인의 사랑을 받아들였어라.
이 사랑이 사막에 피어난 백합꽃과 똑같은 사랑이로구나.

                                  4.부시가 손에 쥔 거는 사막에 신기루 뿐이로고


 부처님께서 법어를 말씀하신다. 부시가 이라크에서 잡은 것은 사막에 신기루일 뿐 이라고. 세속의 탐욕으로 찾은 거는 모두가 그런 것, 풀잎에 이슬 같고 꿈과 같은 것.


부처님이 대중 앞에서 드셨던 꽃은 허공에서 쏟아진 허공 꽃이었어. 빛도 없고 모양도 없고 향기도 없고 이름도 없고. 이거는 백일몽이고 신기루인 게야


미국의 승리와 영광도 결국 백일몽이고, 풀잎에 이슬이 해가 돋으면 사라지듯이 사라지고 마는 거

부시가 찾은 기름도 사막에 모래 일 뿐이야. 그가 게걸스레 한입 가듯 채워 넣은 거는 깔깔하고 서걱이는 모래이리니


이걸 씹어 삼키자니 이빨과 창자가 싫다하고, 이 걸 뱉어 버리자니 비웃음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고
그러게 내가 머랬어, 부시 씨. 미국이 참으로 세상에 패권국이 되려면 노자 선생님께 한수 배우라고 했잖아


무위(無爲)의 도를 배우라고


다스리지 않음으로 다스리는 거가 무위의 도니 좀 어렵기는 하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은 거 아니것어?


“이라크에 가보니 대량 살상무기도 없었고 또 독재자 후세인도 이제 사라졌으니, 미국의 안보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이라크 백성을 독재자 후세인에게서 해방시키는 일도 끝난 거 아니것어? 그러니 이제는 염려 푹 놓고 미군은 이라크에서 떠나라고. 이라크는 이라크 백성이 다스리게 해 주면 되는 게야.”


그리고 부시 씨는 지금 김자윤 님이나 찾아가서 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남은 여생을 꽃이나 사랑하며 즐길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신나고 아름다운 일이겠어!

이제금 바그다드에도 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왔으면 좋으련만. 한때는 압바스조 이슬람제국 수도로 찬란히 빛났다는 바그다드가 영국과 미국의 연이은 침략으로 견디기 힘든 겨울을 맞이했지만. 찬란한 제국의 수도는 신기루였을 뿐임을 깨닫고. 이 봄에 힘없는 자들의 작은 수도로 거듭 살아나서 봄꽃이 활짝 핀 새봄을 즐길 수 있었으면 더없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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