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고수레! 평화여, 평화여…

황인채

 “고수레님, 부시란 놈 혼 좀 내주세요. 꼭 그 놈이 하는 짓이 힘만 세고, 무지한 건달이 설쳐대는 것하고 똑 같아요. 제 힘만 믿고, 주먹으로 세상을 제 맘대로 휘저으려는… 깡패!”


  정순 씨는 혼잣말로 고수레에게 빌고는 섬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둑한 거리에는 술에 취한 사내 둘이 갈지자걸음을 걷고 있었을 뿐, 수상한 낌새는 없었다.

 정순 씨가 지금 다니는 제품 집 주인 여자는 미국 대통령 부시를 세계 대통령이라고 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고, 쌈도 잘하는 미국이라는 나라 대통령 부시는 어쩌면 세계 대통령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높고 귀한 자였다.

 그런 사람을 아무리 혼잣말이라지만 험한 말투로 고수레님께 저주하였으니… 미국에는 귀신 뺨치게 재주가 뛰어난 간첩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이 간첩이 곳곳에 깔려서, 청와대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하는 말도 다 엿듣는다는데, 겁도 없이 그 무서운 나라 대통령을 예사로 저주하다니.


  그러나 아무리 부시가 무섭더라도 그는 사람일뿐이다. 진짜 귀신인 고수레와 부시가 싸운다면 아마 고수레가 이길 것이다. 귀신은 사람 눈에는 보이지도 않으면서도 자신은 사람을 잘 보고, 사람 마음까지 잘 읽을 수 있고, 사람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신통한 재주를 가졌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도 귀신은 무서워하는 것일 거다. 귀신이 무서워서 대통령 취임식 때 성경을 손에 들고 예수 귀신 앞에서 선서를 하는 것일 거다. 예수 귀신이 미국 대통령의 든든한 빽이 되어 달라고 비는 것일 것이다.


  예수에 대해서라면 정순 씨도 일가견이 있다. 기껏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했고 제품 집에서 미싱사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배운 것 없는 정순 씨지만 예수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하느님의 아들이며, 또 하나님이라는 예수, 세계를 몇 마디 말로 일 주일 동안에 만들고, 그 세계를 다스리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다스린다는 엄청난 예수! 한때 정순 씨는 그 예수에 미쳤다.


  그러나 지금은 식었다. 예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다른 신들이 들어왔다. 그네의 부모님과 부모님의 친구들이 믿었던 신들이었다. 고수레도 그 중의 하나였다. 농사꾼이었던 그네의 아버지는 들에서 술이나 밥을 들 때면 먼저 고수레에게 대접을 하고 들었다.

 술잔 바닥에 술을 조금 부어서 뿌리며 “퇴 고수레!”라고 하고 밥도 반 숟갈도 안 되게 퍼서 던지며 같은 말을 하였다.

 

 정순 씨는 고수레라는 귀신 앞에 붙이는 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고수레야 이것이나 먹고 떨어지라는 것인지, 아니면 고수레님 모든 재앙을 물리치고 농사가 잘되게 해주십시오, 하고 비는 것인지 잘 모른다. 어쨌든 고수레는 이렇게 하찮은 대접을 받는 하찮은 신이었고, 하찮게 믿는 신이었다.


  왜 엄청난 예수 대신 시시한 고수레를 믿고, 고수레에게 빌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사연이 복잡해서 긴 말을 해야 한다. 간단히 줄여서 한 마디로 말한다면 믿음이 식었기 때문이었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고,

 성경에서 말하는 하느님을 믿을 수 없었다. 예수를 믿어야 복을 받고 죽어서는 천당에 가며, 예수를 믿지 않으면 살아서는 화를 당하며 죽어서도 지옥에 간다는 소리도 촌년 겁주는 쓸데없는 소리로 여겨졌다.


  예수는 믿을 수 없는데 고수레는 믿을 수 있더냐, 고 묻는다면 예수보다는 고수레가 훨씬 소박해서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그 날도 정순 씨는 복음을 전하겠다고 성경을 들고 집을 나섰다.

 성경에는 재앙을 막아주는 부적이나 큰 조화를 부릴 수 있다는 여의주와도 같이 신통한 힘이 있다고 믿었기에 성경을 항상 들고서 전도에 나섰던 것이다.


산동네에서 키가 크고 우락부락해 보이는 육십 대 나이가 든 아주머니를 만나서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했더니, 이 아주머니는 눈에 약간의 살기를 띈 적의를 드러내며


  “일없어요. 나는 신령님 믿고 복 받고 있으니 댁이나 예수 잘 믿고 복 많이 받아요.”
이러는 것이었다.
  “신령님은 마귀여요. 예수 믿어야 구원받아요."


정순 씨가 이렇게 정면 공격을 하고 나갔다면 아마 험악한 말이 나온 것 같은 기세여서
  “신령님은 참신이 아닌데요. 예수님만이 참 신이어요 .”
  이렇게 자신 없는 음성으로 받았다.


  “참 신? 서양에서 온 예수 귀신이 무엇이 더 좋아. 한국 신령님이 더 좋지. 신령님 잘못 건들었다가는 큰 일 나는 것 몰라? 신이라는 것이 뭣인디? 공을 들여야 신이 생기고 영험이 있는 거지.

 참 신이 어디 따로 있어? 나는 평생 신령님에 공들여서 신령님 영험으로 사는 사람이여!”


  육십 대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생김새만큼이나 우락부락하고 커서 정순 씨는 더 대꾸하지 않고 살며시 꼬리를 내리고 도망하였다.


  그런데 그때 그 아주머니가 했던 말이 바로 지금 정순 씨의 신앙이 되어 되어있는 것이다. 신은 사람이 공을 들여서 만드는 것이다. 신의 신통한 능력은 공을 들인 결과로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공을 들이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신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믿는 신만을 옳다고 하고 다른 신은 모두 마귀라고 하는 예수 귀신은 얼마나 꽉 막히고 제 주장만 내세우는 막무가내인가? 고수레님은 한국의 신이고 소박한 신이다. 하찮은 신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지 모르는 잡신이다. 이 하찮은 신이 좋아서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신은 이미 다 만들어진 신이라기보다는 만들어 가야 하는 신이었다. 그렇다면 정순 씨는 이 신을 만들어 가는 교주가 되는 것인가.


 지난번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 때였다. 아침에 일하러 나갔더니 제품 집 주인 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큰 일 났어. 전쟁 났어. 미국에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빌딩을 때려서 무너지고 사람이 수없이 죽었다여. 아매, 빨갱이가 그랬나 봐. 시상이 어찌될라고.”
  “누가 그래요?”
  “어제 밤에부터 텔레비전에 계속 나왔는데. 텔레비전도 안 본 모양이지."


 정순 씨는 가슴이 털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군대에 가있는 외아들 철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소리에 그렇게 놀라는 것이다. 정말 정순 씨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고생하고 살았던 보람이라고는 철기밖에 없다고 할 만큼 철기는 그네의 모든 것이었다. 정순 씨가 그네의 남편과 이혼을 하지 않고 이제껏 살아온 것도 철기 덕분이었다.

 

철기가 중학교 때 정순과 남편 사이에는 큰 위기가 있었다. 지금껏 묵묵히 일을 잘하던 목수인 남편이 일을 잘 나가지 않고 술을 마시고 성질을 부리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자연 정순 씨와 남편 사이에 다툼이 잦아지고 둘 사이에는 점점 나빠지기만 하였다.


  그때부터 정순 씨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내린 정순 씨 가정에 대한 진단은 다음과 같았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생긴 재앙이니 예수 잘 믿으면 재앙이 사라질 것이니라.

 그러나 정순 씨가 예수를 잘 믿으려고 노력할수록 남편과 사이는 더욱 나빠졌다. 남편은 술에 취하면 여편네가 살림은 않고 교회에만 미쳐서 남편을 사람답게 보지 않으니 살맛도 일할 맛도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것에 대한 교회의 진단은 또 이런 것이었다. 마귀가 예수 못 믿게 하려고 장난을 하는 것이니 더욱 열심히 믿고 열심히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성경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열심히 하라고 하였다. 정순 씨는 그대로 따랐다. 남편은 이제 부인을 완전히 교회에 뺏겼다고 생각하는지 더욱 술버릇이 고약해졌다.


  “이 년아, 예수가 네 신랑이냐, 목사가 네 신랑이냐. 차라리 네 샛서방 예수 따라 나가버려.”
이렇게 막말을 하며 손찌검까지 했던 것이다. 정말, 가정은 파탄되기 일보 전이었다. 이 아슬아슬한 위기를 넘긴 것은 철기 때문이었다. 철기를 위해서 참고 참았던 것이다.


  정순 씨는 주인아주머니가 말하는 전쟁이라는 것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어제께 너무 피곤해서 텔레비전도 못보고 잠을 잤던 것이 원망스러웠다.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정말 안 된다.


  정순 씨는 오전 열 시가 되어서야 텔레비전을 보고, 미국에서 일어난 큰 사건은 빨갱이가 저질은 사건이 아니라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일으킨 사건이라는 것을 알고 다소 안심하였다. 북한 사람이 일으킨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그 때문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지는 않을 것이었다.


  정순 씨는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알았다. 그들을 빨갱이라서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예수가 아닌 알라라는 신을 믿는 것 때문에 미국과 사이가 나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정순 씨 네 목사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

 이슬람교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믿는 종교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사라와 결혼을 하였는데 자식을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사라가 자신의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주었다.

 그랬더니 하갈이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나중에 사라도 아브라함의 나이 백 세가 되고 자신의 나이 구십 세가 되던 해에 아들을 나서 이삭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렇게 되자 사라는 첩의 아들 이스마엘을 쫓아내서 이삭과 함께 상속자가 되지 못하게 하자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이 일로 걱정할 때 하느님은 첩의 자식 이스마엘을 인정사정없이 쫓아내라고 하였다.

 결국 첩의 자식 이스마엘은 빈손으로 쫓겨나게 되고 알라 신을 믿는 이슬람교의 조상이 되었다. 본처 자식 이삭은 야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하느님을 믿는 유대교의 조상이 되었다.


  곧 야훼를 믿는 이삭이 이은 유대교는 정통이고 알라를 믿는 이스마엘이 찾은 이슬람교는 정통성이 없이 쫓겨난 사교라는 이야기였다. 오늘 날에도 야훼를 믿는 미국을 비롯한 기독교 국가는 하느님의 복을 받아서 잘 사는 나라가 되고 알라를 믿는 이집트를 비롯한 이슬람교를 국가들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 못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하였다.


 교회에 다닐 때 정순 씨는 목사님이 가르쳐 주는 성공공부를 매우 열심히 하였다. 목사님은 성경이야 말로 일 점 일 획도 틀림없는 하느님의 말씀이고, 하느님 말씀을 순종해야 복을 받는다고 하였다.


  정순 씨는 하느님을 잘 믿는 사람이 되어 이삭처럼 복을 받은 사람이 되어, 자신도 남보란 듯이 잘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 교회에 충성을 다했다. 그런데 정순 씨가 예수를 믿고 새 사람이 되려 하니까,

 과거부터 정순 씨의 가정에 붙어있던 가난과 불신을 가져준 나쁜 귀신이 집요하게 방해를 하였다. 정순과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을 통하여 마귀는 정순을 참을 수 없도록 괴롭혔다.


  “이 년아, 예수가 네 신랑이냐, 목사가 네 신랑이냐. 차라리 네 샛서방 예수 따라 나가버려.”


남편은 술에 취하면 정순 씨를 때리며 들볶았다. 젊었을 때는 제법 미남이었던 남편은 이때는 얼굴마저 마귀처럼 고약스러웠다. 이제는 영혼의 신랑인 예수를 선택하던지 세속적인 신랑인 기철이 아버지를 선택하던지,

 이것이냐 저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막다른 곳까지 이르렀다. 정말 큰 도박의 순간이 닥친 것이다.


  “아 하느님, 나에게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하느님께 순종하였던 예수를 본받을 수 있는 힘을 주세요. 나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될지언정 예수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이혼을 결심하려는 순간에 남편보다 더욱 정순 씨를 괴롭히는 것은 아들 기철이었다. 기철을 위해서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 설혹 하느님에게 벌 받아서 지옥에 가더라도 기철을 위해서 예수를 버리고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정순 씨를 고문처럼 괴롭혔다.


  그때 구원처럼 떠오른 말이 있었다.


  “참 신? 서양에서 온 예수 귀신이 무엇이 더 좋아. 한국 신령님이 더 좋지. 신령님 잘못 건들었다가는 큰 일 나는 것 몰라? 신이라는 것이 뭣인디? 공을 들여야 신이 생기고 영험이 있는 거지. 참 신이 어디 따로 있어? 나는 평생 신령님에 공들여서 신령님 영험으로 사는 사람이여!”


  육십 대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생김새만큼이나 우락부락하고 컸다.


  그랬다. 정순 씨 어머니는 키가 크고 우락부락하지는 않았지만 정순 씨를 위한 정성은 몹시도 컸다. 정순 씨를 위해서 절에다 공을 들이고 칠성님과 신령님께 빌었다. 아, 그렇다면 정순 씨가 이렇게 큰 어려움에 빠진 이때 어머니께서 공을 들였던 영험이 꼭 나타나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정순 씨는 무엇에 끌리듯이 우의동에 있는 작은 절을 찾아갔다. 그리고 법당으로 찾아가서 옛날에 어머니께서 했듯이 부처님께 두 손을 합장하고 무수히 절을 하였다.


  “부처님 당신이 나를 좀 도와주세요.”


  이런 정순 씨를 예수님이 하느님을 버린 자라고 질투하며 벌을 줄 것인가, 가슴이 졸였다.


뒤에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았더니 그 절의 스님이었다. 정순 씨는 처음 보는 스님에게 횡설수설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스님은 참회를 하라는 간단한 말씀을 남기고 저리로 사라져 버렸다.


  정순 씨는 참회하라는 말을 꾀나 오랫동안 닭이 알을 품듯이 마음에 품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그 말은 예수 대신 참 부처를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폭군인 기철이 아버지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해 보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지나치게 예수를 믿은 것이 잘못이니 그것을 반성해 보라는 말 같기도 하였다. 세속의 즐거움에 잘못 빠졌던 것을 반성하고 인연을 끊고 출가하여 도를 닦으시오, 라고 하는 말은 정말 아닌 듯했다.


  못 배우고 어렸을 때부터 늘 가난했던 정순 씨는 자주 자신의 팔자에 대하여 한탄을 하여왔다. 그러나 메뚜기에게도 한철은 있다는데 자신에게도 한철을 있으리라고 믿었다.

 언젠가는 자신도 남보란 듯이 살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고, 그 아들 기철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도 남보란 듯이 잘사는 한철은 오지 않았다.

 

 어쩌면 돈이 없어 자식 교육을 잘 못 시키고, 자식에게 돈도 남겨주지 못해서 기철이도 또 정순 씨처럼 가난하고 천하게 살 것이었다. 나이가 늘어 이제 뭇 남성들의 성적인 관심의 대상에서도 멀어져 가게 되자 정순 씨는 더욱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정순 씨의 이런 마음의 변화가 여러 방식으로 남편에게 전달되어 남편을 괴롭혔던 것이 아닐까? 정순 씨 가정에 닥친 위기의 원인은 정순 씨에게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람이 내려 보고 살아야지 위를 보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있는데, 정순 씨는 분에 넘치는 욕심을 냈던 것이 아닐까?

 

그 욕심이 예수가 자신의 팔자를 한꺼번에 바꿔줄 자로 허황된 믿음을 갖게 하고, 예수를 지나치게 믿는 예수병 환자로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정순 씨는 반성하고, 보이지도 않는 신랑 예수 대신 못났지만 자신의 댕기머리를 풀어준 남편을 선택하기로 했다.


  참회는 이렇게 시작되고 이에 따라 정순 씨 가정에도 조금 씩 평화가 찾아와 고였다. 참회로 찾은 평화는 이런 것이었다. 그저 무덤덤하게 사는 것이었다. 가난을 이불처럼 편안하게 덮고, 하찮고 천하게 사는 것을 극락으로 여기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수 년이 흐르고 기철은 이제 청년이 되어 군대에 가서, 몸성히 국가를 위해서 군복무에 충실하고 있으니 부모님 염려하지 마세요, 하는 편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아 그런데, 무지막한 테러가 평화를 깨버렸다. 겁도 없이 미국에,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빌딩에 비행기로 부딪혀서 저도 죽고 많은 죄 없는 사람을 죽였다. 알라를 믿는 아랍 사람들이 저질렀다고 한다. 퇴 고수레! 맙소사!


  그 후로 몇 개 월 동안을 모두가 알듯이 텔레비전에서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일어난 분쟁소식을 가장 중요한 소식으로 다루었다. 미국은 테러범을 잡겠다고 아프가니스탄과 기어이 전쟁을 하였다. 그리고 옛날에 정순 씨가 다였던 교회 목사는 그 전쟁에서 미국이 꼭 이길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참신 예수를 믿는 미국 사람이 이슬람교를 믿는 아프가니스탄을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하였다. 그런데 교회의 일부 피 끓는 젊은 학생들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다고 하였다. 사랑의 하느님은 전쟁으로 피를 흘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였다.


  정순 씨는 테러고 전쟁이고 원치를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 전쟁에 우리 군대도 파견이 될까 겁이 났다. 만에 하나라도 기철이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면 그것은 엄청난 재앙이었다. 다행이 우리 군대는 파견되지 않았고, 전쟁은 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죽이고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여기서 9·11 테러 뒤처리가 끝이 났더라면 정순 씨는 그 일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 정초에 미국 대통령 부시는 이라크와 이란과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하고 새해를 전쟁의 해로 선포하였다. 올해는 이라크를 쳐서 없애고 내년에는 이란이나 북한을 쳐서 없애려 한다는 소리도 들렸다.


  “염병할 넘 전쟁은 뭔 또 전쟁이여. 그만했으면 평화를 선포하고 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해사지.”


정순 씨는 마음이 심히 불편하였다. 전쟁을 이라크와 이란과만 한다면 또 그렇게 큰 신경을 쓸 일이 아니지만 북한과도 전쟁을 하였다는 것은 정말 큰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또 육이오 때처럼 전쟁이 나서, 아들 기철이 비참하게 죽을지도 모른다.


  제품 집 주인 아주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세계 대통령 부시 말을 듣지 않고 그 많은 미국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 빨갱이 새끼들은 된통 혼이 나도 싸다고 하였다. 정순 씨가 아랍 사람들은 빨갱이가 아니고 북한이 사람들과 다르다고 해도 주인아주머니는 다르긴 뭐가 다르냐고 달라봐야 그게 그것일 것이라고 하였다.

  정순 씨는 매일 같이 만나서 밤늦게까지 같이 일하고 같이 살아가는 주인아주머니와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기 쉬운 말로 사람들은 그저 교회에 가면 선하게 살라고 좋은 말만 해준다고 하고, 정순 씨도 교회에 미쳤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구약 성서를 보았을 때 야훼는 분명히 잔인한 전쟁의 신이었다.

 자신을 믿고 따르지 않고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을 씨도 남기지 않고 무지막하게 살해 하였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그린 책인 구약 성서는 어린이들이 보여서는 안될 만큼 나쁜 책이었다.


  신약 시대 예수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고 좋은 말도 많이 했지만 어쨌든 성경은 흠이 많은 책이었다. 그런데도 정순 씨 교회 목사님은 성경은 일점일획도 변함없는 하느님 말씀이라고 하였다. 많이 배운 목사님이 왜 이러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정순 씨는 알라가 어떤 신인지는 모른다. 알라도 만약 야훼처럼 전쟁을 즐기는 잔인한 신이라면 알라와 야훼 사이의 다툼은 쉽게 그치지 않으리라.


  “아, 고수레님! 당신께서 알라와 야훼를 찾아가서 좀 깨우쳐 주세요. 전쟁이나 테러로는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없다고요. 저들이 폭력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고 돕게 하여주소서. 다정한 친구가 되어 사이좋게 살게 하소서. 그리고 야훼 하느님,

  당신이 참으로 전능하신 하느님이라면 답답하게 시시한 성경 속에 갇혀서 살지 말고 성경을 벗어나서 저 높은 곳으로 훨훨 나르소서. 전쟁대신 말로서 하소서. 알라를 찾아가서 좋은 말로 설득하소서.”


  이 땅에 평화가 봄날 아침 햇살처럼 가득했으면 좋겠다. 요즈음 텔레비전에서는 볼수록 신이 나고 가슴 뭉클한 장면들이 나오고 있었다. 부산 아시안 게임에 나온 북한 선수단과 예쁜 아가씨 응원단이 펼치는 신나는 응원 말이다. 빨갱이 나라에서 온 아가씨들은 뿔 달린 괴물이 아니고 예쁘고 친근한 선녀였다.

  정순 씨는 저 가운데서 하나를 뽑아서 기철의 색시를 삼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정순 씨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는 또 좋지 않은 소식도 있었다. 부시 대통령이 전쟁으로 이라크 후세인을 몰아내겠다고 큰소리치는 것이었다. 후세인은 부시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싸우고 싶으니까, 주먹이 근질거리니까, 공연히 생트집을 잡고 있어요.”


  정순 씨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참았던 말을 기어이 입 밖에 내고 말았다.


  “아, 빨갱이가 감히 세계 대통령 앞에서 건방지게 구니까 그렇겠지. 왜 이유가 없어. 이유가 없어 보이면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겠지, 왜 이유가 없겠어.”


  제품 집 주인 아주머니를 정순 씨가 부시를 몰아붙이면 팔을 걷어 부치고서 막아서서 부시의 방패가 될 기세였다. 참아야지. 공연히 남의 일에 주인아주머니와 정순 씨가 싸울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두덜거렸다. 세계 대통령이라니, 힘세고 돈 많으면 제일인가? 언제 부시가 세계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부시가 세계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나는 절대로 안 찍을 것이여. 정순 씨 표정에는 차고 굳은 어떤 것, 얼음처럼 쌀쌀한 기운이 스쳐서 지나고 있었다.


  정순 씨는 다시금 섬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밤 열 시 반. 어두운 거리에는 아까 보았던 술 취한 남자 둘이 비틀걸음을 걷고 있었다. 밤 열 시에야 일이 끝나는 정순 씨는 이맘때면 늘 이 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일에 지쳐 쌓인 피로와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가 함께 섞여서 정순 씨 마음은 평화로웠다.


  정순 씨와 술 취한 남자 사이가 매우 가까워졌다. 어슴푸레 두 사람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정순 씨는 그 중 한 사람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그 사람은 텔레비전에서 늘 보던 부시였다. 부시가 미묘한 표정을 하고 정순 씨를 노려보고 비틀거리며 접근했다.


  “아이고, 누구 좀 나를 도와줘요. 엉큼한 부시가 나를 겁탈하려고 해.”


정순 씨는 하마터면 크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틀거리던 술 취한 남자는 다시 자세를 바로 하여 걷고, 그는 부시가 아니고 평범한 조선 남자였다. 제품 집 주인 여자가 부시의 아내가 아니고 조선 여자이듯이 말이다. 정순 씨는 어이없는 착각을 하였던 것이다. 걸음을 재촉해서 그들을 앞질렀다.


  저만치 정순 씨 집 불빛이 보였다. 기철이 아버지는 자신도 일에 지쳐 피곤하건만 정순 씨를 위해 저녁 준비를 해 놓았을 것이다. 가정. 그곳에는 무덤덤한 평화가 있었다. 냉수처럼 청량하고 무덤덤한 평화의 소중함이여. 이 평화는 참회를 하여 얻은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과 후세인 대통령도 참회를 했으면 좋겠다.

 부시는 반성문을 써서 알라 앞으로 부치고 후세인은 반성문을 써서 야훼 앞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게 정 싫다면 한국의 잡신인 고수레 앞으로 반성문을 써도 좋다.


  “고수레! 평화여, 평화여! 평화의 신이신 고수레님이 전쟁의 신을 꺾고 세계 평화를 주시고 이 나라에는 통일도 주소서. 미국인도 악의 축의 나라 사람들도 평화롭게 살게 하소서. 또한 세계가 통일이 되어 세계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도 좋지만 전쟁을 좋아하는 부시를 세계 대통령이 되게는 절대로 하지 마소서. 그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막아주소서.”


  정순 씨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이 나올 만큼 간절하게 빌었다. 속이 후련해지고 평화의 새는 정순 씨의 마음속에서 파닥파닥 날개를 치며 힘차게 앞으로 날았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