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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스와라지

 

저자 : M. K. 간디

편집 : H. M. 브야스

역자 : 황  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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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국산품 장려운동(Swadeshi)

 

스와데시는 우리에게 가까운 지역에 있는 산물이나 용역을 사용하고 먼 지역에 있는 것을 배제하는 우리 안에 있는 정신이다.

이에 따라서 그 정의에 맞게 종교에 대하여 말하자면, 나는 신앙생활을 우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종교를 믿는 것으로 제한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주변 종교 환경을 관습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것에서 결함이 있음 발견한다면, 그것이 가진 결함을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써 그 종교에 헌신하여야 한다.

정책의 영역에서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제도를 사용하고, 그것들에서 증명된 결함들은 고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에 헌신하여야 한다.

경제의 영역에서는 나는 오직 나의 가까이에 사는 이웃들이 생산한 제품만을 이용하고, 그것들에서 부족한 점이 발견된다면 그것을 효율적이고 완벽하게 생산하도록 도움으로써 그 산업체들에 봉사하여야 한다.

이러한 스와데시운동이 관행으로 잘못 행하여지든 습관을 줄여간다면 우리를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시대로 이끄는 계기가 될 것이다.

 

위에서 스케치한 스와데시의 세 갈래 길에 대하여 간단히 조사해 보자.

힌두교는 보수적인 종교가 되었고, 그리고 그것의 배경에 깔려있는 스와데시 정신 때문에 큰 세력이 되었다. 그것은 다른 종교를 개종시키려 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관대한 종교이고, 그리고 그것은 예전에 그랬든 것처럼 지금도 팽창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힌두교는, 나는 그것이 잘못 유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불교를 흡수하면서, 쫓겨나지 않고 계승되었다. 스와데시 정신의 합리성에 의해서, 힌두교도는, 힌두교가 최상의 종교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결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혁의 도입에 의해서 그것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의 종교를 바꾸기를 거절한다.

그리고 내가 힌두교에 대하여 말한 것은, 세계의 다른 신앙들이 그러하듯이 진리이며, 특별히 힌두교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는 생각을, 가정이긴 하지만, 나는 고수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내가 고통스럽게 도달한 견해를 밝힌다. 내 생각에는, 인도의 훌륭한 선교사들이, 잘하여 왔고 현재도 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인도는 깊이 감사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박애주의 활동을 계속하는 한편에 앞으로도 여전히 잘할 것이고, 그리고 그들은 기독교도를 힌두교도로 개종하겠다는 목표를 중단하는 것에 의해서 기독교 정신에 더욱 잘 봉사하지 않았는가?

 

스와데시 정신을 따르기 위하여, 나는 토착화한 제도들을 말하여야겠는데, 마을회의가 나를 사로잡는다. 인도는 확실히 공화국이고,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가해진 모든 충격으로부터 여태까지 살아남은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왕손들과 세도가들, 그들이 인도에서 태어난 자이거들이가나 외국인들이거나 할 것 없이, 세금을 거두는 일을 제외하고는 그 광대한 대중들의 마음을 거의 움직이기 못하였다. 후자(외국인들)는 그들의 편에서 보자면 시저의 것을 시저에 주는 것처럼 하였고, 그 나머지는 자신들에게 좋은 대로 대부분 사용하였다.

방대한 카스트 제도는 사회의 종교에 대한 필요에 대한 대답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필요에 대한 대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카스트 제도를 통하여 그들 내부의 일들을 처리하였고, 그것을 통하여 통치하는 권력자나 권력자들로부터 오는 억압을 처리하였다. 카스트 제도로부터 그것의 조직된 놀라운 힘이 나오는 것을 보며 국가의 조직하는 능력을 부인 할 수 없게 하였다.

누구나 하드와르에서 열리는 순례자들의 대규모 집회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조직체의 힘이 얼마나 능률적인 것인가를 알게 되었을 것인데, 그것은 어떤 노력도 없이 일백만 보다도 더 많은 순례자들을 위한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조직화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이 오늘날 유행이 되었다. 이것은, 나는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새로운 풍습 속에서 양육된 자들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진실이다.

우리는 스와데시 정신으로부터 거의 치명적으로 이탈한 것 때문에 생긴 심각한 장애 아래서 애써왔다. 교육받은 그룹인 우리는 외국어로 우리의 교육을 받았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대중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다. 우리는 대중들에게 우리의 생각을 전달하기를 원했지만 그러나 우리는 실패하였다. 그들은 영국인 관리들을 인정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낫게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영국 관리에게도 우리에게도 열리지 않았다. 열망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거기에 단절이 있었다. 그리고 당신은 조직화에 실패하는 진실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과 표현되어진 것 사이에 일치가 부족한 것을 목격하였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가 우리나라 말로 교육을 하여 왔다면, 우리의 장로들과 우리의 하인들과 우리의 이웃들은 우리의 지식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보스 입자 또는 광자(역주 : 인도의 물리학자 Bose가 발견한 입자)의 발견들은 라마야나(역주 : 인도 고대 서사시)나 마하바라타(역주 : 인도 고대 서사시)가 그러하듯이 왕손들의 보물이었다. 그런데 대중들에 관한한, 그들의 위대한 발견은 외국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어도 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모든 분야들의 교육이 우리의 말로 이루어졌더라면, 나는 대중들이 놀랍게 부유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담대하게 말한다.

마을의 위생문제는 오래전에 해결되었다. 마을회의들은 이제 특별한 방식으로 살아있는 힘이 되었고, 인도는 인도의 요구에 알맞은 자치를 거의 완벽하게 즐기게 되었고, 그리고 인도의 성스러운 토양에 조직적인 훼손을 가했던 치욕적인 광경을 용서하게 되었다. 그것을 고치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

그리고 이제 스와데시의 마지막 갈래에 왔다. 대중들의 심한 가난의 대부분은 경제와 산업적 삶에서 스와데시로부터 심각한 이탈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통상에서 한품목도 인도의 바깥에서 들어오지 않았다면, 오늘날 인도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탐욕스러웠고 또한 영국도 그러하였다.

영국과 인도 사이의 연결은 분명히 잘못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인도에서 실책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영국이 선언한 정책은 인도가 인도 인민에 대한 신뢰에 위에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랭카셔(Langcashire)(역자주: 산업혁명시대의 영국공업지대로 면방직공업의 중심지는 맨체스터였다.)는 (인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스와데시의 가르침이 온전한 가르침이라면, 랭카셔는 한동안 충격을 견뎌야 할지라도, 큰 타격 없이 (인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견뎌야 했다.

나는 스와데시가 복수의 방법에 의하여 시작한 불매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모두가 따르는 종교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지만, 그러나 영국은 쉽게 (무역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지탱하는 나라가 되고, 영국에서 필요한 상품들은 모두 생산양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논문들을 읽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스운 제안이며, 그것이 진리일 수 없다는 가장 좋은 증거는 아마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수입국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도는 인도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보다 먼저 랭카셔나 어떤 다른 나라를 위하여 살 수는 없다. 그리고 만약 인도가 자신의 국경선 내에서 인도에서 필요한 필수품들 모든 것을 생산하고 생산하도록 돕는다면, 단지 스스로를 위해서 홀로 살 수 있다. 인도는 서로를 파괴하고, 질시하고, 다른 많은 악들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미치고 황폐한 경쟁의 돌풍 속으로 끌려 들어갈 필요도 없고, 들어가서도 아니 된다.

그러나 누가 세계의 경쟁 속으로 들어간 것으로부터 인도의 거대한 백만장자들을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히 법률로는 아니 된다. 공중의 의견과 올바른 교육의 힘은, 그래도, 바람직한 방향에서 큰일을 할 수 있다.

손으로 짜는 베틀 산업은 죽어가고 있는 상태이다. 나는 방황하는 동안에 가능한 한 많은 베를 짜는 사람들을 만나보기 위하여 특별한 주의를 하였고, 그리고 한때는 번창하고 영예로운 직업으로부터 어떻게 그들이 버림받고 어떻게 가족들이 퇴직했는가를 알아내고 내 마음은 고통스러웠다.

만약 우리가 스와데시 교의를 따른다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그대들과 나의 임무가 되어야 한다. 건강한 직업을 찾고 있는 이웃들이 있다는 가정 아래서 할 수 있는 일들로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공급할 수 있는 이웃들을 발견할 것, 그리고 그들을 가르쳐서 그들이 어떻게 진행할지 모르는 곳에 필수품들을 공급하게 할 것. 그러면 인도의 모든 마을들은 거의 완벽하게 스스로 지탱하고 스스로 생산하는 독립체가 될 것이고, 마을 내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필수품들만을 교환할 것이다.

이것이 터무니없는 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도는 터무니없는 나라이다. 어떤 친절한 회교도가 깨끗한 마실 물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을 때, 어떤 사람이 (그 물을 마시지 않고) 갈증에 목이 타는 것이 터무니없는 일이다. 결국 아예 수천 명의 힌두교도들이 회교도 가정에서 물을 마시기보다 차라리 목말라 죽었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사람들은 또한, 그들이 인도에서 생산된 옷만을 입고 인도에서 재배한 음식물만을 먹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종교에서 요구하는 교의라고 확신한다면, 다른 옷을 입거나 다른 음식을 먹는 것을 거절할 수 있을 것이다.

 

바가바지타(역자 주 : 700개의 시가가 있는 고대인도 서사 시집) 안에 공짜로 읽을 수 있는 시가 있는데, 대중들은 동류들의 영향을 따른다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만약 지역공동체에서 생각하는 부분이 스와데시 맹세를 따른다면, 그것이 한동안 상당한 불편의 원인이 되더라도, 결국에는 악을 쉽게 되돌릴 수 있다.

나는 삶의 어떤 부분에서 입법부의 법에 의한 간섭을 싫어한다. 가장 좋은 일은 그것이 악을 좀 더 줄이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외국 상품들에 대해 단호한 보호무역 의무를 부과하자는 주장에 대해 관대하고, 참으로 환영하겠다.

대영제국의 식민지인 나탈(Natal)이 또 다른 대영제국 식민지인 마우리티어스(Mauritius)에서 들어오는 설탕에 관세를 부과하여 자국의 설탕을 보호하였다. 영국은 인도에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것에 의해서 인도에 죄를 지었다. 그것은 영국의 양식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인도에게는 독이 되었다.

 

인도는 경제적인 삶에서 좌우지간 스와데시를 채용할 수 없다고 주장되어 왔다. 이것의 반대를 주장하는 자들은 경제적인 삶의 규율로서 스와데시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것은 단지 애국적인 노력이다― 그것은 어떤 절제가 포함되면 결심되어지는. 스와데시는 여기에서 정의하듯이, 개인에게 야기될지도 모르는 육체적인 불편을 전적으로 무시하며 살아가는 종교적인 규율이다.

핀이나 바늘의 부족이 한동안 계속되는 속에서, 왜냐하면 이것들은 인도에서 생산되지 않기 때문인데, 그 필요성은 공포를 야기하지 않는다. 스와데시주의자는 오늘날 그들이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는 수백 가지의 물건들이 없이 살아가는 것을 배울 것이다. 더구나, 그 불가능성을 주장하며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스와데시를 무시한 자들은 스와데시가 확고한 노력에 의해서 결국에 도달해야 할 목표라는 것을 잊는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구입할 수 없는 이러한 물건들의 사용을 임시적인 방편으로 우리 자신에게 허용할 물건들의 모음을 택하는 것으로, 스와데시를 제한하려 한다면, 그 목표를 정해야 할 것이다.

 

나에게 스와데시에 대적하여 일어나는 또 하나의 반대를 고찰할 일이 남아 있다. 반대자들은 그것이 도덕률의 문명의 법도에서 조금도 근거가 없는 가장 이기적인 신조라고 여긴다. 그들에게 스와데시의 실행은 미개상태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나는 그 주장에 대해 세부적 분석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스와데시가 인류애와 사랑의 법칙과 모순되지 않는 유일한 신조라고 주장한다.

내가 나의 모든 가족들에게 거의 봉사할 수 없을 때, 모든 인도에 봉사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가족들에게 나의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더욱 좋고, 내가 그들을 통하여 온 나라에 봉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으로 온 인류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동기가 행동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야기할지도 모르는 고통과 관계없이, 나의 가족에게 봉사를 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자면 사람들로부터 돈을 빼앗을 직업을 내가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에 의해서 내 자신이 부자가 되고, 그 후에 가족들의 많은 불법적인 요구들을 만족시킨다.

이리되면 가족에게도 국가에게도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면 나는 단지, 하느님께서 나에게 손과 발을 나의 생계와 나에게 의존하는 자들의 생계를 위해서만 일하라고 주셨다고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때에는 나는 즉시 나의 삶을 간소화해야하고, 그러면 나는 우리의 생계를 곧장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사례에서 다른 어떤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가족들에게 봉사하였다. 모든 사람들의 이러한 삶의 방식을 따른다면, 우리는 즉시 이상적인 국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나라가 동시에 그런 나라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아 실천하는 우리들 중의 그들이 그러한 행복한 날에 다가가는 것을 분명히 예상하고 촉진할 것이다. 이러한 삶의 계획 아래서, 겉보기에는 인도에게 봉사하는 것이 모든 다른 나라를 배제하는 것이지만, 나는 다른 어떤 다른 나라에 피해를 준 것이 아니다.

나의 애국주의는 배타적이고 포괄적인 두 가지 모두이다. 그것은 모든 일류애 안에서 내가 태어난 국토에 나의 관심을 제한한다는 의미에서 배타적이만, 그러나 나의 봉사는 자유경쟁에 의하거나 대립에 의한 특질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포괄적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당신의 재산을 사용하라. (라틴어. Sic utere tuo ut alienum non laedas)”는 단지 관습법의 격언이 아니고, 그것은 삶의 위대한 교의이다. 그것은 사랑에 의한 비폭력의 적절한 실행에 열쇠이다.

Natesan, p.3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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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맹목적인 숭배대상으로 된다면, 스와데시도 어떤 다른 일들처럼 소멸하여 없어질 수 있다. 그것은 보호되지 않는다면 위험하다. 단지 외국의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외국의 공장들을 거절하고, 적절하지 않은 한 나라의 공장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내의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것은 부당한 바보짓이고 그리고 스와데시 정신의 부정이다.

진정한 스와데시 신봉자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을 갖지 않을 것이고 지구 위의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적대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스와데시는 증오를 숭배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기심 없는 봉사를 신조로 하는 것으로 그것의 뿌리에 순수한 비폭력 즉 사랑을 가지고 있다.

From Yeravda Mandir, 1957, Chap.XVI,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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