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6장
농업과 소의 복지 - III (agriculture and cattle welfare - III)
협동 (Co-operation)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 ‘소 사육업을 개인들의 손으로 하여야 하는가 아니면 집단적으로 하여야 하는가?’였다.
나는 소 사육업을 개인의 사육업으로는 절대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소 사육업과 들소 사육업의 구제는 집단적 노력에 의해서만 할 수 있다. 개별 농부가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소의 복지를 적절하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돌보는 것은 아주 불가능하다. 다른 원인들 중에는 집단적인 노력이 부족한 것이 소떼 감소와 그로인한 전반적인 소떼 감소의 주요 원인이었다.
오늘날의 세계는 모든 삶의 분야에서 집단적이거나 협력적인 노력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 분야에서 많은 부분이 완성되었거나 완성되어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에도 들어 왔지만, 왜곡 된 형태여서 우리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 혜택을 얻을 수 없었다. 우리의 인구의 증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채 농가의 평균적인 토지 보유량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더욱이 개인이 소유한 땅은 흔히 조각조각 나누어져있다.
그러한 농부들이 그들의 집에 소를 기르는 것은 자살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늘날 그들의 상태이다. 경제를 첫째로 하고 그리고 종교적, 윤리적 또는 인도주의적 고려 사항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소들이 산출하는 모든 것보다 많이 들어가는 사료의 가격 때문에 농부가 그의 소들에 의해 먹혀지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그들은 쓸모없는 모든 동물을 대량으로 도살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인도주의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문제이다. 대답은 분명히 우리가 소들의 생명을 구할 뿐만 아니라 소들이 짐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나는 협동하여 하는 노력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음 비교가 도움이 될 수 있다.
1. 집단적 제도 아래에서는 농부가 오늘날처럼 집안에 소를 기를 수 없다. 그들은 공기를 더럽히고, 주위를 더럽힌다. 동물과 같이 사는 데에는 인도주의도 지성도 없다. 사람은 그렇게 할 의도가 없었다. 오늘날 소에 의해 차지되는 공간은 집단적 사육이 채택된다면 농부와 그의 가족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2. 소들의 수가 늘어나면, (소들이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 넓어져서) 농부가 집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그는 송아지들을 팔고 물소 수컷들을 죽이거나 그것들을 쫓아내서 굶겨 죽여야 한다. 만약 소떼를 돌보는 것이 협동적인 기초 위에 이루어진다면, 이 비인간적인 행동은 피하게 될 것이다.
3. 집단적 소의 사육은 병에 걸렸을 때 동물에게 수의사 치료 제공을 보장한다. 어떤 평범한 농부도 혼자서는 이것을 감당할 수 없다.
4. 비슷하게 한 마리의 선택된 황소는 집단적 사육 아래에서 몇 마리의 암소의 (교미의) 필요를 쉽게 채워 줄 수 있다. 다른 상황에서는 이것은 자선을 제외하고는 불가능하다.
5. 동물에게 운동시키기 위한 일반적인 목초지 운동장이나 땅은 협동적인 제도 아래서는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지만, 반면에 오늘날 개별적 농부들에게는 일반적으로 그런 시설이 전혀 없다.
6. 사료에 대한 비용은 집단적 사육제도 아래에서는 비교적으로 훨씬 적게 들 것이다.
7. 좋은 가격에 우유를 판매하는 것이 크게 촉진 될 것이고, 농부가 개인으로서 하는 것처럼 그것에 불순물을 섞을 필요나 유혹도 없을 것이다.
8. 모든 소들에 대한 각각의 적합성 시험을 개별적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마을 전체의 소에 대해서는 이것이 쉽게 행해질 수 있고, 품종 개량을 더 쉽게 수 있게 할 것이다.
9. 앞서 말한 유리한 점들이 협동적 사육을 지지하는 충분한 근거가 되어야 한다. 개인주의적 사육 제도에 대한 지지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그 제도가 우리의 불쌍한 소의 상황은 물론 우리 자신의 상황도 만드는 수단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것의 본질적인 변화를 통해서만 우리 자신과 소를 구할 수 있다.
나는 우리가 협동적 농업에 착수할 때까지는 농업에서 충분한 이익을 이끌어 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 마을에서 백 가구가 그들의 땅들을 집단적으로 경작하고, 그 수입을 그것으로부터 나누는 것이, 땅을 백 조각으로 나누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가? 그리고 토지에 적용되는 것은 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람들이 이러한 삶의 방식을 채택하도록 곧바로 바꾸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곧고 좁은 길은 통행하기가 항상 어렵다. 소 서비스 프로그램의 모든 단계에는 골치 아픈 문제들이 흩어져 있다. 그러나 단지 어려움을 극복함에 의해서 우리는 그 길을 더 쉽게 만들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우선 개인적인 노력에 비해 집단적 소 사육의 월등한 우월성을 보여 주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나는 더 나아가 전자가 틀렸고 후자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개인조차도 협력을 통해 자신의 독립을 보호 할 수 있다. 소 사육에서 개인적인 노력은 이기심과 비인도적 행위에 이르게 하지만, 반면에 집단적 노력은, 그 두 가지 악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할지라도, 그것들을 많이 줄일 수 있다.
H., 15-2-'42,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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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은 그들의 토지를 모으고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들판의 면적에 비례하여 수확물을 나누어야하는가?’
협동에 대한 나의 생각은 토지가 소유주들에 의해 공동으로 보유되고, 공동으로 갈고 제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 자본, 도구 등의 절약을 가져올 수 있다. 소유자들은 협력하여 일하고, 자본, 도구, 동물, 씨앗 등을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협동 농업은 토지의 양상을 변화시키고, 그들 가운데서 빈곤과 게으름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서로의 친구가 되고 한 가족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그 행복한 사건이 일어날 때 공동체의 문제의 형태로 추한 상처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H., 9-3-'47,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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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에게는 협동체제가 훨씬 더 필요하다. 땅은 국가에 속한다. 그래서 협동적으로 일할 때 가장 큰 수확을 얻는다.
협동은 엄격한 비폭력에 근거해야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폭력적인 협동의 성공 같은 그런 일은 없다. 히틀러는 후자의 강력한 본보기였다. 선한 일이 인격의 파괴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는 또한 국민들에게 강요된 협력을 쓸데없이 주장했고, 모든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독일이 어디로 이끌어졌는지를 알게 되었다.
만약 인도가 폭력의 수단에 의한 협력에 기초하여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 될 것이다. 비폭력 불복종의 설득력을 통해 변화가 이루어질 때에만, 즉 사랑으로, 인격의 토대가 보존 될 수 있고, 그리고 현실적이고 지속적인 진보가 세상에 보장된다.